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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25) 불일협곡 옥천대와 용추폭포
    지리 박물관(역사,문화,) 2022. 5. 11. 08:33
    협곡 암벽은 세상 잊게하고 깊이 모를 폭포는 날 잊게하네




     

    불일폭포 아래에서 내원골 합수지점까지 이어지는 불일협곡. 가파른 계곡 사이에 크고 작은 돌들이 엉켜 있는 모습이다.


    한풀 꺾이긴 했지만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폭염이 예외인 곳이 있다. 바로 지리산이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원시수림이 울창하고 광활한 지리산은 수많은 골이 모세혈관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어 언제나 청정옥수가 흐르고 청량한 기운을 뿜어낸다. 예부터 지리산에 들면 살길이 열리듯 무더운 여름에도 지리산에만 들면 더위를 잊을 수 있다. 탐방팀은 하동 화개의 쌍계사 주차장을 출발해 내원골을 거쳐 불일협곡 내 최치원 유적지를 탐방하고 불일폭포, 불일암, 청학봉, 소은산막으로 이어지는 산허리 길을 걷고, 내원수행촌을 거쳐 내원골을 따라 쌍계사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산행에 나섰다.

    내원골은 남부능선 서쪽사면, 혜일봉능선과 내원능선 사이 계곡이다. 내원재에서 흘러내린 내원골은 내원수행촌 아래에서 불일폭포골과 합수되고 쌍계사 경내를 지나 화개천으로 흘러드는데 쌍계사(雙磎寺) 이름도 화개천과 내원골의 두 골이 만나는 지점에 절이 위치해 쌍계가 유래됐다.

    내원골 좌측의 등로를 따라 40여분 오르다가 내원골을 횡단하는 지점에서 등로를 버리고 계곡을 따라 오른다. 소박한 내원골의 정취를 가득 느끼며 계곡을 올라, 불일협곡 들머리에 도착한다. 내원수행촌 조금 아래, 내원골과 불일협곡이 합수되는 지점이다. 오늘의 주 탐방지, 좌측의 불일협곡으로 들어선다. 불일협곡은 불일폭포 아래에서 내원골 합수지점까지의 짧은 구간이지만 지리산 최고의 협곡이다.




    혜일봉능선과 내원능선 사이의 계곡인 내원골


    세상과 단절된 별세계 불일협곡= 불일협곡 초입, 수문장 같은 무명의 협곡폭포가 탐방객을 맞이한다. 좁은 협곡 사이로 하얀 실폭이 쏟아져 내린다. 폭포 앞에 서니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지글거리는 염천의 세상과 단절된 별세계, 협곡 내로 들어섰음을 실감한다. 음이온을 가득 쏟아내는 실폭, 수량이 많으면 환상적이겠지만 이 정도도 좋다. 폭포를 잠시 감상하고 협곡을 오른다. 불일협곡을 지키는 수문장 폭포답게 통과 절차가 까다롭다. 쉽게 길을 내놓지 않아 좌측사면으로 기어올라 우회해 폭포지대를 통과하고 협곡 심처로 진입한다. 불일협곡은 거친 만큼 계곡이 불안정하다. 크고 작은 돌들이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엉켜있다. 그래도 몇 군데 아담한 소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저만치 협곡이 막혔다. 큰 바위가 협곡을 통째로 가로막은 모습이다. 폭포도 하나 걸려 있는데 수량이 많을 때는 꽤 볼 만하겠다. 폭포 옆에는 바위들이 뒤죽박죽 수직으로 불안하게 뒤엉켜 협곡의 거친 분위기에 일조한다. 잠시 분위기를 즐기다가 탈출로를 찾아본다. 좌측은 까마득한 암벽이고 우측도 가파른 바위 험로다. 다행히 우측 절벽사면에 로프가 걸려 있어 조심하며 차례로 올라선다. 불일협곡의 최대 난코스지만 차분히 오르면 별 애로가 없다. 전원 무사히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협곡이란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다. 계곡 양쪽 절벽 암사면이 까마득하다. 좌우 탈출이 불가한 요새 같은 협곡이다.



     

    최치원이 수행처로 삼았다는 옥천대와 쌍갈래 폭포


    최치원 수행처 옥천대와 용소의 전설= 불일협곡 오르길 1시간째, 최치원의 전설 서린 옥천대(玉泉臺)에 도착한다. 집채만한 바위 밑에 암굴이 있고, 그 옆에는 운치 있는 쌍갈래 폭포가 쏟아지고 있다. 척 봐도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든다. 옥천대는 신라 최고의 지성 최치원이 공부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바위 밑 암굴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천장이 높아 허리를 펴고 서도 될 정도다. 그리고 안쪽에 내실이 하나 더 있다. 좁지만 평평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바위 밑에 구들을 놓아 온돌방으로 이용한 흔적도 있다. 근래까지도 수도하는 사람들이 이용했다고 한다. 이곳은 복잡한 세상과 단절된 별세계다. 최치원은 쌍계사에 기거하며 일대를 돌아보다가 깊은 협곡 내 이곳을 발견하고 자신의 수행처로 삼았다. 그리고 쌍계사 창건 당시 이름인 옥천사(玉泉寺) 이름을 따 옥천대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옥천대를 돌아보고 잠시 쉬었다가 용추폭포로 향한다. 옥천대와 지척간의 거리다. 계곡이 우측으로 꺾이고, 잠시 오르면 불일협곡 최고의 폭포 용추폭포가 있다. 초록이끼와 검은 바위홈통으로 하얀 물줄기가 쏟아지니 더 신비감이 느껴지는 용추폭포다. 폭포 아래에는 2개의 용소가 있다. 안쪽과 바깥쪽, 그래서 겹용소라고 부른다. 이곳에 살던 용이 승천하며 꼬리를 쳐서 협곡 좌우로 백학봉과 청학봉을 만들고 그 사이에 불일폭포가 생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승천한 용의 전설 이후, 후세들은 불일폭포를 감상하고 그 아래로 접근 불가한 협곡의 신비감에 또 다른 전설을 만들었다. 지리산과 가야산을 이어주는 통로가 이곳 용추폭포 아래 안쪽 용소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고, 최치원은 이 통로를 통해 지리산과 가야산을 오갔다는 전설이다. 탐방팀은 용소를 살펴본다. 먼저 바깥용소, 한가운데는 제법 깊어 발끝이 닿지 않는다. 바깥용소를 거쳐 안쪽 용소로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좁은 협곡이 주는 압박감, 깊이를 알 수 없는 시퍼런 물길, 물안개까지 피어오르니 으스스한 신비감마저 더한다. 폭포수 아래까지 접근해 보지만 한가운데는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다. 최치원의 동굴통로는 미제로 남겨두자. 너무 자세히 알면 재미없으니까.

    불일협곡에 든 지 2시간 반 만에 협곡을 탈출한다. 이어 불일폭포와 불일암을 돌아보고 불일폭포 상단을 건너 청학봉에 오른다. 솔숲이 멋진 청학봉, 옆에는 단애의 절벽, 그 아래 불일폭포가 있고 맞은편에 불일암과 백학봉이 조망된다. 선선한 솔바람에 땀을 식히고 소은산막을 향해 길을 이어간다.



     

    초록이끼와 검은 바위가 신비감을 자아내는 용추폭포


    소은산막과 고운 유람길= 청학봉에서 소은산막 가는 길은 조금 묵었지만 운치 있는 산 허리길이다. 마음을 낮추게 하는 나무 하심목(下心木), 돼지가 참선하는 바위 돈선암(豚禪岩), 마음을 바로 세우는 정념정(正念亭), 부처를 향한 바위 향불암(向佛岩), 기침을 가라앉게 하는 무천대(無喘臺), 사람을 살리는 고개 활인령(活人嶺) 등 곳곳에는 소은산막 주인이 명패를 달아놓아 정겹게 느껴진다. 청학봉에서 30여분 걸어 활인령 고개에 이른다. 내원수행촌과 소은산막 갈림길이다. 좌측으로 10여분 오르면 소은산막이 있다.

    산막으로 가는 길 주변은 아름다운 정원같이 노부부의 정성이 깃든 꽃길이다. 모과나무, 밤나무, 감나무, 배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삼엽국화는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고, 능소화, 분홍바늘꽃, 풀협죽도, 부용도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다. 노부부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 55년이 지났다고 한다. 그때 기와, 자기파편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원래 이곳에는 소은암이란 암자가 있었다. 암자의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은 맷돌 2개뿐, 자연석으로 만든 맷돌은 고려시대의 것이라고 추정한다. 소은산막에서 20여분 내려서면 내원수행촌이다. 내원수행촌은 쌍계사 안쪽 내원골 깊숙이 자리한 수행자의 마을이다. 잠시 돌아보고 내원골 옆의 등로를 따라 쌍계사로 향한다. 하동군에서 이 길과 연계해 내원수행촌과 청학봉, 불일암, 쌍계사로 이어지는 ‘고운(孤雲) 유람길’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산 후 탐방팀은 쌍계사 경내에 들러 최치원 친필의 진감선사비를 돌아본다. 1130년 전의 숨결이 떨림 속에 전해진다. 이는 살아있는 거룩한 역사다. 한 사람의 생애를 통째로 바꿔 놓은 지리산, 그리고 그 속에서 신선이 된 최치원, 그를 떠올려 보며 쌍계사 산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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