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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27) 칠선골과 제석봉골, 제석봉과 제석단
    지리 박물관(역사,문화,) 2022. 5. 23. 11:38

    산길 따라 물길 따라 물든 가을, 참 곱다

     

     

    치열했던 지난여름도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지리산 고봉에는 소리 없이 가을이 내려앉았다.

    울긋불긋 단풍이 산 사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용담과 쑥부쟁이, 구절초 등 가을꽃이 만개해 산정을 수놓는다.

    산객은 가을향기 풍겨나는 제석봉 정취에 맘을 빼앗겨 갈 길마저 잃는다.


    제석봉 주변의 단풍


    가을맞이를 겸한 이번 탐방지는 제석봉과 제석단이다. 접근로는 칠선골과 제석봉골, 두 골을 통해 제석봉에 올라, 앞서오는 지리산 가을을 느껴보고 제석단을 거쳐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일정이다. 산행기점은 함양 마천의 백무동, 이른 아침 탐방팀은 칠선골을 향해 창암릉을 오른다. 아침의 서늘한 날씨도 경사를 더해가는 오름 길에 금방 온몸에 땀이 배어난다. 20여분 오르니 등로 주변에 석축들이 나타난다.


    지리산 제석봉골. 협곡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고 군데군데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석축은 산 사면 곳곳에 보이는데 사람이 기거했던 흔적들이다. 예전 이곳에는 ‘고점동’이란 마을이 있었고, 6·25전쟁 때에는 인민군총사령부가 설치되기도 했다. 고점동은 유서 깊은 마을인데, 가락국 시대에는 이곳에서 무기를 생산했다고 한다. 마천 일대에는 두지터, 성안, 국골, 대궐터 등 가락국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고점동 마을도 그중 하나이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농기구를 만들어 내다팔곤 했는데, 6·25전쟁 때 정부 소개령으로 고점동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산행시간 1시간, 창암릉에 올라선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창암 사거리 바로 아래에 위치한 조망바위에 올라본다. 역광으로 눈이 부시고 운해까지 엷게 끼어 조망이 좋지 않다. 천왕봉은 운해에 가렸고 제석봉, 중봉, 하봉과 초암. 창암능선, 그리고 칠선골이 뿌옇게 조망된다. 잠시의 조망을 뒤로하고 창암 사거리를 지나 사면길을 따라 칠선골로 내려선다.


    칠선폭포


    ▲계절을 잊은 듯 역동하는 칠선계곡= 계절을 잊은 듯 역동하는 초가을 칠선골, 우렁찬 물소리가 온 계곡을 쩌렁쩌렁 울린다. 조용한 능선길과 요란한 계곡길은 철 따라 느낌이 다르지만 오늘은 능선도 좋고 계곡도 좋다.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균형 잡힌 칠선폭포, 오늘도 역시 칠선골의 중심을 잡아주며 굉음을 토해내고 있다. 잠시 돌아보고 10여 분 거리로 이웃한 대륙폭포를 탐방한다. 마주선 대륙폭포, 언제 봐도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대폭이다. 압도하는 기운이 참 좋다. 잠시 머물다가 되돌아 나와 제석봉골로 향한다. 칠선계곡은 이 부근에서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좌측의 대륙폭포골, 중앙의 칠선골 본류, 그리고 조금 위쪽, 우측으로 제석봉골이 가지를 치고 있다.


    대륙폭포

    마치 삼지창처럼, 제석봉골 들머리 초입부터 폭포가 걸려 있다. 염주폭포다. 협곡 입구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며 출입을 통제한다. 폭포수가 마치 구슬을 꿰놓은 듯 흐른다고 해 ‘염주폭포’라 불리는데 물길 건너기가 어려워 좌측으로 우회해 염주폭포 상단으로 진입한다.

    제석봉골은 칠선계곡의 지류로 그 끝은 제석봉으로 향하고 있다. 제석봉(1808m)은 천왕봉, 중봉에 이어 지리산 3위의 고봉이다. 그만큼 제석봉골 또한 길고 깊으며 가파르다. 칠선계곡 합수부에서 최소한 4시간은 걸어야 제석봉으로 탈출할 수 있다. 제석봉 정상부는 고봉임에도 펑퍼짐하며 넓은 초원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사면의 물이 풍부하다. 그래서 제석봉골 물길은 해발 1600m대까지도 이어진다.


    다이아몬드폭포

    ▲영롱한 구슬과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제석봉골= 계곡은 심처로 들수록 가을 분위기가 짙어진다. 녹엽은 변색 중이고 바닥에는 다래, 도토리가 사방에 널렸다. 마가목, 말오줌때, 참빗살나무는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호젓한 가을 분위기 속에 제석봉골을 1시간쯤 오르니 협곡 사이로 큰 폭포가 나타난다. 이 골을 대표하는 다이아몬드폭포다. 폭포물결이 마름모 형상을 하고 있어 다이아몬드폭포라고 불리는데, 한편으로 제석봉골을 대표하기에 제석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뜯어볼수록 아름다운 폭포다. 잠시 감상하고 우회해 폭포상단으로 진입, 계곡을 이어간다. 상부로 오를수록 제석봉골은 비경을 풀어낸다. 거대한 통암반과 홈바위폭포, 실폭포, 이끼와폭이 차례로 나타난다. 수로 같은 바위홈통으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도 인상적이다. 지리산 산중에는 멋진 홈바위폭포들이 많이 있지만 2등이라면 서러워할 아름다운 모습이다. 통암반 지대를 통과해 잠시 오르니 골이 좌우로 나뉜다. 본류는 제석봉으로 향하는 좌골이다. 저만치 우골 초입 부근에 폭포가 보여 잠시 올라 탐방하고 좌골을 이어간다. 우골 초입의 폭포, 이 폭포도 특이하다. 성벽 같은 석벽에서 가는 물줄기가 수십 가닥 떨어진다. 바위 하단에는 석굴 형태를 형성하고 음지식물이 가득 자라고 있다. 폭포 모습이 마치 목욕탕 샤워기를 닮았다. 다시 좌골로 돌아와 계곡을 오른다. 고도를 높일수록 이끼류는 짙어지고 나뭇잎도 서서히 추색으로 물들고 있다.

    좌골로 들어선 지 1시간 20여분, 좌골 최상부를 통과한다. 물소리 잦아들더니 서서히 물길도 끊긴다. 계곡을 벗어나 희미한 길을 따라 관목과 미역줄나무 지대를 통과해 제석봉 북사면 평원으로 올라선다. 군데군데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이어 오른 제석봉 정상, 주변 단풍도 좋다. 하지만 자욱한 운해로 기대했던 천왕봉 단풍 조망을 할 수 없어 아쉽다. 대신 33만㎡의 광활한 제석봉 평원을 돌아보고 제석단으로 내려선다.


    홈바위폭포

    ▲천신을 받드는 제석봉과 제석단= 제석봉과 제석단은 예부터 아주 특별하고 신성한 곳이었다. 선조들은 천왕봉을 지척에서 바라보는 이 위성봉에 천신을 상징하는 제석(帝釋)이란 이름을 붙였다. 또한 그 자락에 제석단(帝釋壇)을 만들어 천신에게 제를 올렸다. 고대국가 때부터 나라의 중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심성이 바르고 흠결이 없는 제관을 파견해 이곳에서 제를 올렸으며, 지방고을에서도 큰 행사를 앞두거나 성공을 빌거나 지역발전과 주민평안을 위해 기원제를 지냈다고 한다.


    제석단

    민초들 역시 수시로 이곳 제석단을 찾아 개인의 안녕과 발복을 기원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근세에 들어 이러한 신성한 제석단에 당집이 들어서기도 했고, 심지어 고급목재를 구하기 위한 제재소까지 건립된 적이 있다 하니, 아연할 따름이다. 당시에는 아름드리 구상나무, 전나무, 잣나무들이 산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고 한다. 벌목으로 없어지고 불길에 휩싸여서 이제는 고사목만 일부 남아 있다.

    제석단의 사연들을 떠올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제석봉 서사면 바위자락 200㎡ 크기로 자리 잡은 제석단, 조망이 아주 좋다. 연하봉과 한신골, 그 뒤로 지리산 주능선과 서북능선이 막힘없이 조망된다. 뒤쪽 석벽 아래 끊임없이 솟아나는 석간수, 한 모금 들이켜 보니 기분 좋은 청량감이 혀끝에 맴돈다. 석벽에는 글들이 새겨져 있는데, 제석당(帝釋堂)이라 음각한 각자도 보인다. 볼수록 명당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는 폐허 속에 잊혀가고 있는 제석단, 제석단의 의미가 더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천신의 영험한 기운으로 화합의 새로운 기운이 돋아나길 기원하며 제석단을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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