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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상산,赤裳山 - 무주
    전국 산행기 2023. 10. 25. 08:37

    # 언제: 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 산행지: 전북 무주 적상산( 赤裳山), 상산, 상성산 가을 단풍산행

    # 산행거리: 11.00km   00시간00분

    # 산행루트: 서창공원지킴터 - 장도바위 - 서문 - 삼거리 - 향적봉(Back) - 적상산 - 안렴대(Back) - 안국사 - 

                        적상산성 - 적상산 사고 - 송대폭포 - 치목마을 주차장

     

     

    후회(後悔)

     

    다음에 가지.

     

    다음에 하지.

     

    다음에 만나지.

     

    생각 없이 다음에

    다음에만 연발 하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아까운 靑春

    다 지나가 버렸다!

     

     

    적상산( 赤裳山), 상산, 상성산

     

    적상산,赤裳山   높이:1034m   위치: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적상산,赤裳山 높이 1,034m이다.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서 북서쪽으로 약 10㎞ 지점에 있다. 덕유산국립공원 북동부에 있으며, 주위에는 백운산·대호산·단지봉·시루봉 등이 있다. 산정부는 비교적 평탄하나,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암벽을 치마바위라고도 하며, 가을철이면 온 산이 빨간 옷을 입은 것 같다 하여 적상산이라고 했다. 동안·서안·북안에서는 금강의 지류인 무주남대천이 발원하며, 계곡이 방사상으로 발달했다. 적상산에는 단풍나무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많아 주위의 바위와 잘 어울리고, 인근 마을에는 어디에나 감나무가 많아 가을의 경관이 특히 뛰어나다. 적상산성(사적 제146호)이 있으며, 조선 후기 성내에 적상산사고가 세워졌다. 성내에는 안국사와 호국사가 있다.

     

    특징,볼거리

    적상산은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여인네의 치마와 같다 하여 적상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가을뿐만 아니라 철따라 독특한 개성미를 가득 뿌린다. 적상산에는 장도바위, 장군바위 등 자연 명소와 함께 최영 장군이 건의하여 축조했다는 적상산성(사적 제 146호)이 있다. 현재의 성은 조선 인조6년(1628년) 다시 쌓은 것으로서 둘레가 8.143㎞에 이른다. 적상산성 안에는 고찰 안국사 등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운치를 더해 준다. 적상산은 적상면 중앙에 솟은 향로봉과 기봉 두 봉우리를 주봉으로 한다. 북쪽 향로봉과 남쪽 기봉이 마주하고 있는 정상일대는, 흙으로 덮인 토산이라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다. 하지만 지면에서 800-900m 가량되는 산허리 까지는 층암절벽이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이다. 험한 바위산인 탓에 등산로는 서창리 지소 쪽이나 조금 아래 쪽으로 내려가서 안국사로 오르는 적상교가 일반적이나 안국사로 오르는 길은 돌비탈을 지나야 하고 길도 애매해서 지소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125위)

    상산·상성산이라고도 한다. 높이 1,029m.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4m)에서 북서쪽으로 약 10㎞ 지점에 있다. 덕유산국립공원 북동부에 위치하며, 주위에는 백운산(559m)·대호산(592m)·단지봉(769m)·시루봉(499m) 등이 있다. 산정부는 비교적 평탄하나,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절벽 주변에는 단풍나무가 많다. 이 암벽을 치마바위라고도 하며, 가을철이면 온 산이 빨간 옷을 입은 듯하다 하여 산의 이름을 적상산이라고 했다. 동안·서안·북안에서는 금강의 지류인 무주남대천이 발원하며, 계곡이 방사상으로 발달했다. 적상산에는 단풍나무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많아 주위의 바위와 잘 어울리고, 인근 마을에는 어디에나 감나무가 많아 가을의 경관이 특히 뛰어나다.

     

    #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덕유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하여 축성된 적상산성(사적 제146호)과 안국사 등이 유명하다.

     

     

    장도바위

    무주군 적상면 서창마을에서 2Km 거리에 위치

    고려말 최영장군이 민란을 평정하고 개선하던중 이곳에 이르러 산 전체의 붉은 단풍과 깍아세운 암벽에 띠를 두근듯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산 정상에 오르게되었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절벽같은 바위가 길을 막고있어 더 이상 산을 모르지 못하게되자, 장도를 뽑아 바위를 힘껏 내리쳤다. 그 순간 바위가 양쪽으로 쪼개지면서 길이 열렸다하여 장도바위라 불리게되었다한다.

     

     

    적상산성, 赤裳山城

    사적 제146호. 지정면적 214,975㎡, 둘레 8,134m. 현재 북문지·서문지 및 사고지(史庫址)가 남아 있다.《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성은 석축으로 둘레 1만6920척, 높이 7척이었으나, 이제는 폐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성내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 1612년(광해군 4)에 실록전(實錄殿)이, 1614년에 사각(史閣)이, 1641년(인조 19)에 선원각(璿源閣)·군기고(軍器庫)·대별관(大別館)이 1643년 호국사(護國寺) 등이 세워졌는데, 이들은 별장·참봉·승장 들이 거느리는 무리에 의하여 수호, 보존되었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불과 90여년 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성이 있는 적상산(赤裳山)은 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하는데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로이기도 하였으며, 산 가운데에는 넓은 분지가 있다.

     

    고려 말에 거란군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만은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고려말 왜구들의 침입 때는 삼도안렴사가 병사들을 이끌고 들어와 진을 쳤던 고성(古城)이기도 하다.

    최영(崔塋)은 사방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하였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崔潤德)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대 사고 중 북쪽의 묘향산 사고가 위험해지자 천혜의 요새인 적상산성 안에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국사(國史)를 지켜왔던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향로봉, 해발1.024m

     

     

    안렴대, 按廉臺

    적상산의 남쪽 층암 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고려 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三道) 안렴사(按廉使)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按廉臺)라 불리고 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石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할 정도로 사방이 낭떠러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사방이 낭떠러지 절벽으로 이루어진 안렴대 전망대에서는 왼쪽으로부터 백두대간의 무주 삼봉산(1,255m), 덕유산 향적봉(1,614m), 남덕유산(1,507m), 장수군의 장안산(1,237m), 팔공산(1,151m), 진안군의 선각산(1,142m), 내동산(887m), 마이산(687m), 고산(875m), 부귀산(806m), 운장산(1,126m), 명도봉(863m), 완주군의 대둔산(879m), 대전의 계룡산(847m), 금산군의 서대산(904m), 천태산(715m), 무주군의 적상산 향로봉(1,024m)까지 산 그리메가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가을에는 마치 붉은 치마폭을 펼친 듯한 아름다운 단풍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안렴대는 적상산 최고의 뷰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안국사, 安國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1277년(충렬왕 3)에 월인(月印)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복지(卜地)인 적성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으며 주변에는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다. 지금 절이 자리한 곳은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었으므로 호국사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일주문·선원·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천불전·요사·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천불전·지장전·삼성각·호국당·일주문·요사채가 있으며 극락전 안에는 보물 제1267호인 괘불(掛佛)이 있다. 괘불은 1728년(영조 4)에 조성하였다. 높이 10.75m, 너비 7.25m로서 천재지변을 몰아내는 이 고장의 신앙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표면은 비단, 뒷면은 마(麻)로 되어 있다. 이 괘불은 의겸(義謙) 등 비구니 5명의 공동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극락전은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로서 1613년에 중건하였고, 1864년에 중수한 건물인데, 1991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또한, 적성산성에는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호국사비가 있다.

     

     

    적상산사고, 赤裳山史庫

    북방에 위치한 묘향산사고(妙香山史庫)가 후금의 위협뿐만 아니라 사고 관리의 소홀로 소장 도서가 망실(亡失)될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다른 적당한 장소에 실록을 이치(移置)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1610년(광해군 2) 순안어사(巡按御史) 최현(崔睍)과 무주현감 이유경(李有慶)의 요청에 따라 사관을 적상산에 보내 땅 모양을 살피게 하고 산성을 수리하게 하였다. 1614년 적상산성 안에 실록전(實錄殿)을 건립했으며, 4년 뒤인 1618년 9월부터 실록이 봉안되기 시작, 1633년(인조 11)까지 묘향산사고의 실록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서 보관하였다.

     

    1641년에는 선원각(璿源閣)을 건립하고 『선원록(璿源錄)』을 봉안하여 적상산사고는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병자호란 때 5사고 중 마니산사고(摩尼山史庫)의 실록이 산실(散失)되어 이를 다시 보완하는 작업이 1666년(현종 7)에 시작되었다.

     

    이 때 적상산사고본을 근거로 등사 · 교정 작업을 했는데 3도 유생(三道儒生)이 300명이나 동원되었다. 이 사고의 설치를 계기로 사고의 수호와 산성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승병을 모집하고 수호 사찰(守護寺刹)을 건립하는 등 여러 방안이 강구되었다.

     

    사고 설치 직후에는 승려 덕웅(德雄)이 승병 92명을 모집해 산성을 수축하는 한편, 분번(分番)으로 사각(史閣)을 수호하였다. 특히 정묘호란 때에는 사고를 지킬 사람이 없어 승려 상훈(尙訓)이 사고의 서책을 성밖의 석굴(石窟)로 옮겨 보관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 사고에 다시 봉안하였다. 사고의 수호가 이와 같이 어려워지자 1643년 산성 안에 호국사(護國寺)를 창건해 수호 사찰로 하였다.

     

    조선 말기에 사고가 퇴락해 1872년(고종 9) 실록전과 선원각을 개수했으며, 1902년에는 대대적인 개수 공사를 하였다. 1910년 조선의 주권을 강탈한 일제는 실록을 구황실문고(舊皇室文庫)로 편입해 장서각에 보관시켰다. 그러나 산질(散秩)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뒤 6 · 25전쟁 중에 분실되어버렸다. 실록전과 선원각의 건물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선원각은 부근 안국사(安國寺) 경내로 옮겨져 천불전(千佛殿)으로 전해오고 있다. →사고(史庫)

     

     

    송대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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