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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등산
    전국 산행기 2023. 11. 20. 10:02

    # 언제: 2023년 11월 20일 일요일

    # 산행지: 광주의 어머니 산 무등산 산행

    # 산행거리: 16.55km   05시간43분

    # 산행루트: 의상봉 - 꼬막재 - 규봉암 - 장불재 - 입석대 - 서석대 - 중봉 -

                         동화사터 - 토끼등 - 바람재 - 원효사

     

     

    무등산(無等山)

    광주의 어머니산 무등산이 도립공원 지정 40여년만인 2013년  3월 4일 한국의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환경부는 2012년 12월 27일 국립공원위원회를 열어 무등산 국립공원 지정안을 심의해 확정했고 2013년 3월 4일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와 동부사무소를 열어 관리 업무에 돌입했다.


    무등산은 도심과 가까운 국립공원이지만,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천연기념물 제465호인 무등산 주상절리대가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어 명품공원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등산은 전체적인 산세는 산줄기와 골짜기가 뚜렷하지 않고 마치 커다란 둔덕과 같은 홑산이다.


    무등산의 특징은 너덜지대인데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경관이다. 무등산은 완만한 산세로 대부분이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태만상의 암석들이 정상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널려 있어 그 웅장함으로 인하여 도민의 신앙대상이 되어온 신산으로 알려 졌다.


    특히 서석대, 입석대, 규봉의 암석미는 대단하다.
    무등산의 삼대 절경인 입석대, 서석대, 광석대를 일컬어 무등산 삼대석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봄의 철쭉, 여름의 산목련,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등 변화가 많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 3월 4일 국립공원 제21호로 지정되었다.


    무등산국립공원은 전체면적 75.425㎢로 광주광역시(북구, 동구)와 전라남도(담양·화순군)에 위치하고 있다.
    무등산에는 증심사, 원효사, 약사암, 규봉암 등의 사찰과 산의 북쪽 기슭인 충효동에 환벽당과 식영정, 소쇄원 누정 등의 유적이 있다.

     

     

    의상봉(義湘峰)

    원효사에서 정상을 바라보면 그 아래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의상봉(550m)인데 위는 완만하지만 서쪽 사면은 절벽으로 준수한 경관을 이룬다. 의상봉은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8,300만년 전)의 미문상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부에 암상이 노출되어 있다. 의상봉에는 팬홀(panhole)과 토르(tor) 등의 풍화지형이 잘 관찰되는데, 비마족바위와 벼루바위의 팬홀이 잘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1592~1598) 의병장인 김덕령 장군이 지왕봉의 뜀바위에서 말을 타고 여기까지 단번에 뛰어내려 생긴 말 발자국이 비마족바위라고 전해진다.

     

     

    규봉암,奎峰庵

    규봉(奎峰)은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에서 동남쪽으로 3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1,100m에 이른다. 규봉암(奎峰庵)은 규봉에서부터 남동쪽에 이르는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상부에서 약 900m, 규봉에서 약 600m에 이른다. 규봉은 1872년 「채색 지도」에도 무등산 정상부의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표시되어 있다. 규봉암은 행정 구역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규봉암을 말하지 않고서는 무등산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무등산의 또 다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규봉암에 대한 기록은 신라 시대에 의상 대사가 서석과 규봉을 보고 정사(精舍)를 세웠다고 한 것이 최초이다. 조선 초기 문신 권극화는 “광산(光山)의 진산을 무등산 혹은 서석산이라고 하는데, 그 형세가 웅장하여 모든 산에 비길 바가 아니다. 산 동쪽에 암자가 있어 이를 규암(圭庵)이라 하고 그 곁에 서석(瑞石)이 겹겹이 서 있는데 [중략] 옛날 의상 대사가 이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비로소 정사(精舍)를 세웠고, 계속하여 보조와 진각이 공부하여 도를 얻어 그 꽃다운 자취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삼존석(三尊石)과 십이대(十二臺)를 보면 대개 이를 생각할 수가 있다.” 라고 하면서 무등산에 대한 아름다움과 규봉암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후 제대로 절의 모습을 갖추어 창건하기는 798년(신라 원성왕 14)에 당에서 귀국한 순응 대사였다고 전하고 있다.


    권극화가 언급한 규봉암은 암자와 함께 있는 서석(
    瑞石)을 통틀어 이야기 하고 있다. 규봉에 있는 암자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 창건되고, 폐사되었다가 재건되고,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지만, 규봉암의 서석은 오랜 세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규봉 일대의 서석은 입석대, 서석대로 대표되는 무등산의 주상 절리 지형이다. 무등산의 주상 절리 지형은 암괴가 크고 장엄하며, 암괴가 층층이 단을 이루어 마치 병풍과 같은 모습을 갖는다. 그 중에 규봉암은 다양한 주상 절리대가 주변의 식생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계절마다 그 색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규봉은 행정 구역상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 있으며, 높이 약 1,100m이다. 규봉은 무등산 정상부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진 능선부의 중간에 위치한 규봉암은 규봉의 남동쪽 약 600m에 있고, 높이 약 850m이다. 일반적으로 불리는 규봉암 일대에 있는 층층의 암괴를 규봉으로 불리운다.

     

    규봉암을 노래한 시와 기행문

    무등산의 생성 과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규봉암 경관의 아름다움이다. 과거 많은 선인들은 규봉암 일대의 경관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대표적인 시로는 김창흡과 기대승의 시가 있다. 이들은 규봉암의 주상 절리를 “무수한 기이한 봉우리” 또는 “암석의 기이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광석대(廣石臺)[광석대에서][김창흡]
    무수기봉렬(無數奇峯列)[무수한 기이한 봉우리 열 지어 있어]
    회간유차대(
    回看有此臺)[고개 돌리니 바로 광석대로구나]
    식피사적의(
    息疲斯適矣)[피로 풀기에 적당하고]
    연상경유재(
    延賞更悠哉)[구경하기 또한 문득 유유하네]
    후세단제단(
    後勢丹梯斷)[붉은 계단 끊어진 뒤 기세와]
    전도적벽개(
    前途赤壁開)[붉은 벼랑 열린 앞 길이라]
    관기선적근(
    觀棊禪跡近)[바둑 두는 신선의 자취 가까이서 본 듯하여]
    부좌욕망회(
    趺坐欲忘迴)[가부좌하고 않아 돌아갈 마음 잊었네]

     

    규봉사(圭峯寺)[규봉사에서][김극기]
    궤상고난명(詭狀苦難名)[괴상한 모양 무엇이라 이름하기 어려운데]
    등림만상평(
    登臨萬象平)[올라와 보니 세상이 눈 아래에 있네]
    석형재금출(
    石形裁錦出)[돌 모양은 비단을 잘라 만든 것 같고]
    봉세탁규성(
    峯勢琢圭成)[산 형세는 옥을 깎아 이룬 것 같네]
    승천병진적(
    勝踐屛塵迹)[좋은 곳에 오니 세속의 더러움 끊었고]
    유서첨도정(
    幽棲添道情)[그윽이 사니 도정이 더하네]
    하당포차망(
    何當抛此網)[어찌 세상 일 버리고]
    부좌학무생(
    趺坐學無生)[부좌하여 무생불법을 배우지 않으리.][『동국여지승람』 권40]

     

    고경명(高敬命)은 1574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무등산과 주변 지역을 답사한 기록인 『유서석록(遊瑞石錄)』을 통해 규봉암, 광석대, 문수암, 은신대 등을 유람한 기록을 남겼다. 이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규봉암(圭峯庵)
    금석사를 지나서 산허리를 감돌아 동쪽으로 나오니 이곳이 규봉으로 김극기의 시에 이른바 ‘바윗돌은 비단을 마름질하여 장식하였고, 봉우리는 백옥을 다듬어 이루었네[石形裁錦出峯勢 琢圭成]’ 라 한 것이 빈말이 아님을 알겠다. 암석의 기묘하고도 오래된 품이 입석과 견줄 만하다고 할 수 있으나 폭이 넓고 크며 형상이 진기하고도 훌륭한 점에서는 입석이 이에 따를 수가 없다. 규봉의 경치는 권극화(權克和)의 기록이나 동국여지승람에 자세하게 나와 있어 생략한다. 그런데 예로부터 전하기를 해동의 서성(書聖)이라 하는 신라 성덕왕 때의 명필 김생(金生)이 쓴 ‘규봉암(圭峯庵)’이라는 삼대문자(三大文字)의 액자가 있었으나 훗날 어떤 자가 절취해 가버렸다고 한다.

    광석대(廣石臺)
    광석대가 있는 곳은 규봉암의 서쪽으로 그 석면(石面)이 깎은 듯 넓고 평탄한 것이 격에 맞고 수십 명이 둘러앉을 만하다. 당초에는 서남쪽이 조금 낮았으나 절의 중이 사람들을 모아 큰 돌을 괴었다고 하는데, 그 엄청나게 큰 바위를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그렇게 하였는지 감탄할 뿐이다. 이른바 삼존석(三尊石)이라 한 것이 광석대의 남쪽에 있는데 그 꼭대기가 숲 위에 창연히 솟아 있어서 바위가 더욱 웅장하게 보여 그 기세를 돕는 것 같다. 또 열 아름이나 되는 노송이 하늘을 가려 비스듬히 광석대 위에 걸쳐 뒤덮고 있으니 그 잎은 푸르고, 그늘은 짙어 시원한 바람이 저절로 일어나 한더위에도 홑것을 입고는 오래 앉아 있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천관산, 팔령산, 조계산, 모후산의 여러 봉우리가 모두 눈 아래 내려다 보인다. 무릇 규봉암의 빼어남이 서석[무등산]에 있는 모든 암자 가운데 으뜸이라면 이 광석대 또한 규봉 10대 가운데 가장 빼어났으니 남쪽에서 제일경이라 하여도 옳을 것이다. 다만 최치원 선생 같은 분의 행차를 얻어 훌륭한 시를 읊어 규봉 위에서 한번 취한 붓을 휘둘러 아름다운 휘호를 남길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감회가 없지 않다. 마치 진주의 쌍계사나 합천의 해인사에 최 선생이 시를 남긴 것처럼.

    문수암(文殊庵)
    광석대의 서쪽 길에는 문지방 같은 돌이 가로질러 있는데 이 돌을 넘어들면 문수암이다. 암자 동쪽 기슭에 오목하게 패인 돌이 있어 그 중앙에서 샘이 솟아나오며 돌 틈에는 석창포가 수북이 피어 있고 그 앞에는 높이가 넓이가 수십 척 되는 바위가 있다. 풍혈대(風穴臺), 장추대(藏秋臺), 광석대에서 서북쪽으로 돌층계를 따라 몇 발자국을 돌면 자월암(慈月庵)이다. 이 암자의 동편에는 풍혈대가 있는데, 돌 밑에 있는 구멍으로 풀잎을 뜯어 넣어보니 조금 펄럭이는 기미가 있다. 이 암자의 서쪽에는 병풍 같은 입석이 있으며 노송이 그 위에 우거져 있으니 여기가 바로 장추대인데 깊은 골짜기를 굽어보면 머리끝이 쭈뼛할 정도로 아스라하다. 장추대에서 서쪽으로 가서 낭떠러지를 따라 남쪽으로 잡아 돌면 오솔길로 나서는데 그 넓이가 한 자도 못된다. 좁은 길에는 패인 곳을 돌로 덮은 데가 더러 있어서 밟으면 덜거덕 하는 소리가 나고 내려다보면 아득한 절벽으로 조심스럽게 돌을 밟고 가는데 걸음을 멈추면 다리가 떨려 발꿈치를 붙이고 설 수가 없다. 낭떠러지가 다하면 움푹 패인 데가 나서는데 마치 원숭이처럼 기어올라야만 한다.

    은신대(隱身臺)
    장추대 남쪽이 곧 은신대인데 여기에는 누운 다복솔[矮松너댓 그루와 철쭉 몇 무더기가 모두 드러누운 듯 자라고 있다. 은신대의 서쪽에 있는 돌은 바둑판같이 네모반듯한데 전하는 말로는 옛날 도선 국사가 좌선하던 곳이라 한다. 그 북쪽에 있는 청학(靑鶴), 법화대(法華臺등은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어 모두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한식경 뒤에 벌벌 떨며 다시 손으로 땅을 짚고 팽조(彭祖)가 샘을 굽어보는 형상으로 조심조심하며 내려와 선생을 모시고 문수암에서 묵었다.”

     

    무등산에서 가장 빼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한 규봉암

    선인들이 무등산에서 규봉암 일대를 최고의 경관 지역으로 보는 이유는 주상 절리 자체의 경이로움이라고 할 것이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큰 암괴와 수정의 6각 기둥 같이 반듯한 암석이 포개어져 있어 이는 하늘에 닿았다고 한다. 이러한 형상은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도 각별하고, 기개의 상징으로 남았을 것이다. 규봉암 일대의 대표적인 지형 경관은 단연 주상 절리이다. 규봉암 일대의 송하대, 광석대, 풍혈대, 장추대, 창학대, 송광대,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은신대 등의 이 주상 절리는 일정한 형태를 보이지만, 각각이 다른 모양으로 어우러져 있다.


    이들 주상 절리대는 수직으로 긴 바위가 층층이 얹혀 있으며, 마치 긴 탑과 같은 형상을 가진다. 하나하나가 봉우리와 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는 듯한 기묘한 바위들이 규봉암을 에워싸고 있고, 주변의 노송들과 어울림이 매우 아름답다. 입석대나 서석대가 바위 자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지만, 규봉암은 바위 자체도 입석대 보다 아름답지만, 여기에 주변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라 하겠다. 규봉암 일대의 바위는 무등산 그 어느 지역보다 크기가 크다. 입석대의 바위가 한 변의 폭이 1.5m 내외를 보이지만, 규봉암의 바위는 한 변의 폭이 3m를 넘는 것들이 허다하고, 높이는 입석대의 두 배에 해당된다.

     

    규봉암 아래에 넘어져 있는 바위는 길이가 약 15m를 보이고 있어,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이러한 바위가 하나의 단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3개의 단 이상으로 층층이 쌓여져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무등산을 등반하면서 규봉암에 도달하면, 주변 풍경에 발길을 멈추게 되고, 절이 가지는 포근함에 머무르게 된다. 하나하나의 주상 절리들을 돌아보고, 화순 이서의 전경을 바라보게 되고, 안양산과 낙타 능선을 볼 수 있는 풍경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지역이 규봉암이다.

     

     

    원효사, 元曉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지증왕 또는 법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문무왕대에 원효국사가 이전부터 있던 암자를 개축한 뒤 머무르면서 원효사·원효암·원효당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고려 충숙왕 때 화엄종의 한 승려가 이곳에 절을 짓고 원효대사의 이름을 따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한다.

     

    그뒤 정유재란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609년(광해군 1) 증심사(證心寺)를 중창한 석경(釋經)이 건물들을 다시 세우고 천왕문을 건립했다. 1636년(인조 14)에는 신원(信元)대사가 중수했고, 이듬해 9월에는 왕견(王堅)대사가 32불을 조성하여 안치했다. 1685년(숙종 11)에는 신옥(信玉)과 정식(淨式)이 지붕을 고쳤으며, 1789년(정조 13)에는 회운(會雲)이 선방(禪房)을 중창한 후 1802년(순조 2)에 법당을 다시 지었다. 1831년과 1847년(헌종 13)에는 내원(乃圓)과 의관(義寬)이 각각 중수했으며 1927년에는 원담(圓潭)대사가 계속 중수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1954~60년에 걸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1980년 5월 대웅전 중창불사(重創佛事) 때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소조불상군·토기·와당·철불두상·고려자기 등 시대가 다른 각종 유물이 140여 점 출토되었다. 또한 절 주변에는 고려시대 부도(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를 비롯하여 조선 중기의 회운당부도와 원효대사부도 등이 있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 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고

    고통 받아야 한다.

     

    옷깃을 한번 스치는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의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 법정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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