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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2024년 11월 16일 토요일
# 산행지: 지터가는 가을 홍골, 작은홍골, 왕시루봉, 선교사수양관, 붉은빛 향연을 이룬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1.3km 06시간30분
# 산행루트: 남산마을 - 큰홍골 - 느진목재 - 왕시루봉능선 - 왕시루봉 - 선교사수양관
봉애능선 - 통천문 - 작은홍골
남산마을
남산마을은 노고단 준령이 남쪽으로 뻗어 질마재를 거쳐 왕시루봉에 이른 곳 아래에 둥지를 틀고 있다.
산비탈에 터를 잡은 마을은 다랑논이 삶의 터전. 서울의 남산과 형세가 비슷해 남산마을로 불리는 마을에는
현재 30여 가구가 모여 산다.
홍류동(紅流洞)
남산마을에서 왕시루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200m쯤 따라가면 넓은 반석이 아름다운 지 계곡이 있다. 현재는 등산로가 폐쇄되어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호젓한 계곡이다. 마을주민들은 이곳을 홍골이라 불렀다. 피아골에서도 단풍이 제일 붉은 골짜기 였다는 얘기다. 피아골은 예로부터 연곡사가 있어 당시의 지식인들이 있었고 특히 구례의 역사상 가장 큰 스승인 천사 왕석보(1816~1868)선생님께서 잠깐 생활하기도 하였다. 천사 왕석보는 매천 황현의 스승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대학자셨다. 남산마을은 비록 작은 마을이지만 서당이 있었고 어른들은 선비의 풍모를 갖추고 생활하셨다고 한다. 일제 초기 남산마을의 세분의 선비들이 평생 사이좋게 지냈는데, 홍골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분들이 이름을 남겨두고 싶었는지 남산마을 서쪽 홍골계곡 암석에 “紅流洞”이라고 음각을 하면서 그 아래 세분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지금도 남산마을 주민들은 이 고사를 떠올리며 서로 양보하여 다툼이 없는 마을로 이름이 높다.
옛날 큰길(신작로)이 뚫리기 전에는 구례에서 외곡리 목아재를 넘어 평도롤 거쳐 당재(당치마을 위 고개)를 넘어 화개면 범왕리 목통마을을 거쳐 범왕으로 또는 신흥, 의신으로 쌍계사로 통행을 하였다. 연곡골과 화개골의 통로인 당재(당치)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이었다. 지리산 둘레길은 목아재~당재~목통을 연결하는 옛길로 확정되었다 한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피아골 이 곳 저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당치마을은 평도 마을에서 연곡사 쪽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데 불무장등으로 오르는 등산로이기도 하다. 당치마을 위 농평마을까지는 승용차가 올라갈 수 있고 농평마을에서 통꼭봉을 거쳐 불무장등으로 삼도봉으로 오를 수 있다. 농평마을은 해발 800m에 있는 “높은 곳의 평평한 곳”이 와전되어 농평이라고 하는데, 풍수 지리적으로 “노호농골(老虎弄骨)이라는 명당터로 이름이 높다. 풍수지리 연구가 들이 구례에 오면 꼭 들렸다가는 유명한 마을이다. 산이나 들 또는 마을에 들어서면 어쩐지 아늑하고 평안한 기분이 드는 곳이 있다, 농평마을은 언제 가보아도 기분이 좋은 마을이다.
피아골은 골짜기가 깊고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비탈진 땅에 석축을 쌓아 많은 농토를 일구었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여순 사건 때 피아골에 사는 인구가 1,200 여명이었다고 한다. 지리산의 마을들은 여순사건과 6,25를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곳 피아골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피아골의 마을들은 불태워졌고 주민들은 피아골 입구인 외곡리, 중기, 조동, 기촌 마을 등으로 피난을 하였다. 이주민들은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으니 군,경에서는 피아골에서 농사를 지을 사람들은 매일 아침 8시까지 목장거리라는 곳으로 오면 팔뚝에다 도장을 찍어주고 군,경에서 총을메고 경계를 서주면서 농사를 짓게 했다고 한다. 소는 반란군에게 다 빼앗겨서 몇 사람이 함께 소 대신 쟁기를 끌어 농사를 지었는데 어렵게 수확한 농산물을 산사람들에게 빼앗기기도 하였다 한다.
피아골에는 옛날 자식을 원하는 사람에게 자식을 낳아주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종녀(種女)들이 살았다고 한다, 종녀촌에는 성신(性神)어머니가 절대자로서 많은 종녀들과 시동을 거느리고 종녀들에게 순종과 희생을 강요했단다. 성신 어머니의 지배아래 씨받이 종녀들은 팔려가서 아들을 낳아주고 다시 종녀촌으로 돌아왔는데, 딸을 낳으면 종녀촌으로 데리고 와서 그 딸을 종녀로 키워야 했단다, 어머니의 대를 이어 종녀로 살아가야 했던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성신 어머니는 자주 성신굴(性神窟)에서 성신(性神)에게 기원제를 지냈는데 시동과 종녀들을 거느리고 제단에 올라 주문을 올리고 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며 성신가를 부르며 요염한 자태로 성신춤을 추었는데, 흥분이 절정에 이르면 젊은 시동과 욕정을 불태웠단다. 종녀촌은 사라졌지만 그렇게 살다 간 종녀들의 외로운 넋이 파랑새가 되어 지금도 슬픈 노래를 부른단다.
.(1974.4 월간 산 56호에 우종수회장님 발표문을 정리함)
홍류동골 반석지대와 각자바위
홍류동(紅流洞) 각자
일제 초기에 남산마을에 세분의 선비가 평생 사이좋게 지냈는데 홍골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분들이 이름을 남겨두고 싶었는지 홍골계곡 암석에 홍류동 글씨를 음각하고 아래에 세분의 이름도 새겼다고 한다.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니 박진환님,김재천님,이판문님이다.
큰홍골
홍골은 왕시루봉을 중심에 두고 좌우로 부채살처럼 흘러내려 해발 600m부근에서 합수되는데, 합수부에서 볼때 좌골을 작은홍골, 우골을 큰홍골이라 부른다. 합수된 홍골(홍류동골)은 피아골 하류인 내서천을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들게 된다.
느진목재
왕시루봉(1,240.2m)
지리산 예로부터 '사람의 산, 역사의 산' 으로 여겨진 지리산은 흔히 어머니의 산이라 불린다. 백여 리의 주능선과 15개의 지능선의 생김생김이 어머니의 넓은 푸과 같이 포근해서일 것이다. 높이 만큼이나 큰산으로 여겨지는 지리산 과 더불어두꺼비의 떼의 울음으로 왜구를 막았다는 전설로 '두꺼비 섬' 자를 붙여 이르지어진 섬진강의 오백리 물길은 지리산을 끼고 굽이쳐 흐른다. 굽이치는 물길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왕시리봉이 손꼽힌다. 노고단에서 구례군 토지면을 향해 뻗어내린 능선의 정점이다. 정상부가 펑퍼짐하고 두리뭉실하게 생겨 마치 큰 시루를 엎어놓은 것과 같다 하여 왕시리봉(1,243m)이라 이름지어졌다. 발 아래 섬진강이 흐르고 백운산과 마주보고 있어 수려한 경관은 비길 데 없이 좋다.봄엔 철쭉이, 가을엔 정상부 초원이 온통 억새밭 으로 변한다.
정상부가 펑퍼짐하고 두리뭉실하게 생겨 마치 큰 시루를 엎어놓은 것과 같다 하여 왕시리봉이 아니고, 왕시리봉의 유래는 어떤지도에는 왕시루봉으로 표기하여 왕시리봉의 모습이 펑퍼짐하여 떡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하여 왕시루봉이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아니고, "높음, 으뜸"을 나타내는 우리 옛말 " 살 " 에서 유래한다고, 초기 삼국시대 관직에 백제의 달솔, 신라의 수마로, 고구려의 욕살 등에서 나타나며, 정수리란 의미도 "살"로 삼아 발달한 단어라고, 살 - 술 - 술이 - 수리 - 시리 또는 시루 등으로 변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선교사수양관
왕시루봉 동쪽 아래에는 '한국 주재 선교사 수양관촌'이 있다. 애당초 노고단에 있던 외국인 별장촌이 6.25전란 때 폐허화되고 또 노고단이 번잡스러워지자 1957년경부터 이곳 왕시루봉 일대로 옮겨와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 외국인 개인별장 10 여 채와 테니스 코트, 간이 풀장, 탁구장이 있는 교회건물, 창고 등이 있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1920년때쯤에 홍콩처럼 99년간의 조차계약을 맺어 노고단을 미국 호주 등 외국인 선교사들 하계별장지로 사용하기로 했는데 그 계약이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유효한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노고단 선교사유적지는 1920년대 호남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미국 등 서양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극복하기 위해 노고단 인근에 수양관 56채를 지었다.
1936년 구약성서를 한글로 번역하기도 했던 곳이지만 일제 강탈로 훼손됐다. 그 후 6·25전쟁과 태풍 등으로 수양관 대부분이 망가졌으며 앙상한 뼈대만 현재 남아 있다.
터만 남다시피 한 곳을 휴 린튼(한국명 인휴ㆍ1926~1984) 선교사가 1962년부터 노고단에서 약간 떨어진 왕시루봉 일대에 수양관을 다시 지었으며, 현재 집 10채와 교회 1채, 창고 1채 등 12채가 남아 있다.재한 선교사 가문 4대손인 인요한 교수(연세대)가 12채를 모두 관리해 왔다.
건물들은 1962년 건축물 증·개축 및 사용기간 만료에 따라 1972년 서울대에 기부 체납돼 등기부상 관리청은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로 변경됐다.왕의강
작은홍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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