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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타봉(상내봉,와불산),독녀암(노장대,함양독바위)
    지리 산행기 2024. 11. 24. 19:03

    # 언제: 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 산행지: 백송사능선,상내봉능선,미타봉(상내봉,와불산),독녀암(노장대,함양독바위)

                    가을 끝자락 찾아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2.3km   07시간 10분

    # 산행루트: 광점동 - 백송사능선 - 상내봉능선 - 미타봉(상내봉,와불산)

                        고열암 - 신열암 - 독녀암(노장대,함양독바위) - 안락문 - 와불산(트랭글지명)

                        상내봉삼거리 - 싸립재 - 싸립재골 - 허공다리골 - 어름터(독가) - 지산대 - 광점동

     

    지리산(智異山)

    지은이: 김돈중(金敦中)

     

    제(오를 제)擧直上最高峰(제거직상최고봉)

    산을 올라 곧바로 최상봉에 이르러,

     

    回首塵寰一片紅(회수진환일편홍)

    풍진 세상을 돌아보니 한 조각 구름일세.

     

    徙倚烟霞得幽趣(사의연하득유취)

    연하 속 배회하여 그윽한 정취 얻으니,

     

    風流不愧晉羊公(풍류불괴진양공)

    풍류는 진나라의 양공에게 부끄러울 것 없네.

     

    김돈중(金敦中,  ?-1170) : 고려 의종 때 명신.

     

    광점동(筐店洞)

    점의 유래는 강점마을에서 왔는데 광주리(강아리,강어리)를 만드는 곳에서 유래되었고 한다.
    마을 안쪽 오름길에 강아리 민박집 간판에서 옛흔적을 찾을수 있다.

     

    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광아리 마을은 산골 중에서도 산골이라 산 이외에는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마을이다. 심산유곡 속에 위치한 광아리 마을은 멀리서 보면 집채만한 바위들이 모두 계곡마다 빼곡히 들어 차 있고 웅장한 지리산 산봉우리가 마을을 병풍처럼 휘감고 있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광아리 마을의 유래도 재미있다. 옛날 벽송대사가 한 도사를 만나 강어리(광주리의 사투리)를 만드며 뒷바라지를 하면서 도를 배우려 했으나 10년이 지나도 반응이 없어 하산을 하는데 공중에서 떨어진 강어리를 맞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광아리 마을이 됐다고 한다.

     

    아래 두개의 지도를 비교해보면 마을 위치가 서로 다른걸 알수 있다.
    빨치산 토벌 작전때 소개령으로
    마을이 아랫쪽으로 이주했다가 현재의 위치에 정착했을 것이다.

    지금의 광점동 주차장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허공달골이다. 옛 광점동과 품개동(品開洞)을 지나 계속 직진해서 오르면 싸립재가 나오는데, 그 능선 일대가 싸리나무가 많으니 광주리 재료를 그곳에서 공수한듯 하다.
    옛부터 돌작업 할때는 홍싸리로 만든 삼태기의 내구성을 따라올 만한게 없었다고 한다.

     

    허공다리골(허공달골) 철다리 폭우로 인해 유실되었다.

     

    벽송사(碧松寺) 능선, 상내봉능선

    벽송사 기점 원점회기산행이 가능하고 산길이 많이 험하지 않으며 거리도 짧은 편이다

    함양군에서 빨치산 루트로 개발한 길이라 비교적 안내가 잘 되어 있다.

    들머리는 벽송사 입구 목장승 부근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붙으면 뚜렷한 산길을 만난다.

    또는 벽송사 뒤쪽 삼층석탑 가는 길의 오른쪽 파란 물통으로 난 오솔길을 따르면 된다.

    하산 때도 같은 길을 따르면 된다.

    산행 1시간 남짓 만에 만나는 [하산길]이란 팻말이 있는 곳에서 11시 방향 왼쪽 길로 가면 송대마을

    마을 위쪽의 다리를 지나는데 오른쪽 길을 따르면 빨치산 루트 안내소 지나 선녀굴 가는 길로 연결

    계곡 왼쪽으로 길이 이어지다 능선으로 붙은 후 선녀굴을 만나고 선녀굴 앞에서 또 왼쪽 능선으로

    오르면 전망대 지나 노장대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노장대를 돌아 나오면 안락문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안락문을 지나면 키 작은 산죽 사이로 능선길이 계속된다.

    오뚜기바위를 만나면 곧 삼거리다.(표지기 많음) 오뚜기바위 등지고 왼쪽 10시 방향이 새봉으로 가 동부능선이나

    진주독바위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듯 난 길이 상내봉을 거쳐 벽송사능선길이다. 이후 만나는 갈림길은 상내봉 정상

    가는 길과 우회길이니 아무 길이나 선택하면 된다.(우회길이 편함) 그 이후는 외길이고 송대 갈림길 지나

    낙엽비트에서는 왼쪽길을 따르면 봉우리를 우회하는 편한 길이다.

    ※ 노장대 직전에 거대한 암벽 아래 암자터가 있는데 이곳이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고열암터입니다.

     

     

    소림선방으로 불리는 미타봉(상내봉,와불산) 뒤쪽의 석굴

     

    소림선방

    議論臺(의논대) - 김종직(1431~1492)

     

    兩箇胡僧衲半肩 : 참선승 두 사람이 장삼을 어깨에 반쯤 걸치고

    巖間指點小林禪 : 바위 사이 한 곳을 소림 선방이라고 가리키네

    斜陽獨立三盤石 : 석양에 삼반석(의논대) 위에서 홀로 서있으니

    滿袖天風我欲仙 : 소매 가득 천풍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 하네.

     

    注 胡僧 : ① 호승 ② 선(禅)의 어록 등에서, 달마대사(達磨大師)를 가리켜 참선승으로 국역함. ③ 호국(胡国)의 중 ④ 서역이나 인도에서 온 중. 소림 선방 :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 있는 한 동굴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간 면벽참선수행을 했다는 소림굴을 말함. 三盤石 : 넓은 반석, 의논대를 가리킴. 天風 : 하늘 바람, 가을바람.

    -퍼온글-

    -도솔산인님-

     

    미타봉(상내봉,와불산)

    상내봉능선(벽송사능선)은 상내봉(1,214m)에서 벽송사로 흘러내린 능선을 말하며, 상내봉은 함양군수 김종직으 '유두류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의론대에서 바라본 향로봉(香爐峯),미타봉(彌陀峯)으로 추정되며 동네주민들 사이에서은 부처바위 혹은 와불산이라고 불리운다.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위치한 벽송사는 앞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에서 흘러내린 두류능선,국골,초암능선,칠선계곡 그리고 창암능선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상내봉(벽송사)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고열암터

    고열암(古涅菴)

    여기서 조금 서쪽으로 가 고열암(古涅菴)에 다다르니, 이미 해가 지고 어스름하였다. 의론대(議論臺)는 그 서쪽 등성이에 있었는데, 유극기 등은 뒤떨어져, 나 혼자 삼반석(三盤石)에 올라 지팡이에 기대어 섰노라니, 향로봉(香爐峯), 미타봉(彌陀峯)이 모두 다리 밑에 있었다. 해공(解空)이 말하기를, “절벽 아래에 석굴(石窟)이 있는데, 노숙(老宿:오랫동안 불가에서 수행하여 불도의 지식을 많이 쌓은 승려) 우타(優陀)가 그 곳에 거처하면서 일찍이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세 암자의 승려들과 함께 이 돌에 앉아 대승(大乘), 소승(小乘)을 논하다가 갑자기 깨달았으므로, 이렇게 칭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잠시 뒤에 납의(衲衣)를 입은 요주승(寮主僧)이 와서 합장하고 말하기를, “들으니 사군(使君)이 와서 노닌다고 하는데, 어디 있는가?”라고 하니, 해공이 그 요주승에게 말하지 말라고 눈치를 주자, 요주승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래서 내가 장자(莊子)의 말을 사용하여 위로해서 말하기를, “나는 불을 쬐는 사람이 부뚜막을 서로 다투고, 동숙자(同宿者)들이 좌석을 서로 다투게 하고 싶다. 지금 요주승은 한 낮선 노인네를 보았을 뿐인데, 어찌 내가 사군인 줄을 알았겠는가?”라고 하니, 모두 웃었다. 이 날에 나는 처음으로 산행을 시험하여 20여리를 걸었는데 극도의 피곤으로 깊은 잠을 잤다. 한밤중에 깨어 보니, 달빛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여러 산봉우리에서 운기(雲氣)가 솟아오르고 있어,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였다.

     

    [원문]

    稍西迤抵古涅菴. 日已曛矣. 議論臺. 在其西岡. 克己等後. 余獨倚杖于三盤石. 香爐峯,彌陁峯. 皆在脚底. 空云. 崖下有石窟. 老宿優陁居之. 嘗與三涅僧. 居此石. 論大小乘. 頓悟. 仍以爲號. 少選. 寮主僧荷衲來. 合掌云. 聞使君來遊. 何在. 空目僧休說. 僧面稍赤. 余用蒙莊語. 慰藉云. 我欲煬者爭䆴. 舍者爭席. 今寮主見一野翁耳. 豈知某爲使君. 空等皆笑. 是日. 余初試險. 步幾二十里. 極勞憊. 熟睡夜半而覺. 月色呑吐諸峯. 雲氣騰湧. 余默慮焉. -퍼온글-

     

    宿古涅庵,고열암에서 자다 (金宗直, 佔畢齋)

    病骨欲支撑,병골욕지탱 : 지친 몸 지탱하려고

    暫借蒲團宿,잠차포단숙 : 잠시 포단 빌려 잠을 자는데

    松濤沸明月,송도비명월 : 소나무 물결(파도소리) 달빛 아래 들끓으니

    誤擬遊句曲,오의유구곡 : 국곡선경에 노니는 듯 착각하였네

    浮雲復何意,부운복하의 : 뜬 구름은 또한 무슨 뜻인가?

    夜半閉巖谷,야반폐암곡 : 한밤중 바위 골짜기 닫혀있구나

    唯將正直心,유장정직심 : 오직 올곧은 마음을 가진다면

    倘得山靈錄,당득산영록 : 혹시 산신령의 살핌을 얻으려나

     

    신열암(新涅菴)터

    김종직_유두류록 1472년

    신열암(新涅菴)을 찾아가 보았더니 승려는 없고, 그 암자 또한 높은 절벽을 등지고 있었다. 암자의 동북쪽에는 독녀(獨女)라는 바위 다섯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높이가 모두 천여 자나 되었다. 법종이 말하기를, “들으니, 한 부인(婦人)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놓고 홀로 그 안에 거처하면서 도(道)를 연마하여 하늘로 날아올라갔으므로 독녀라 호칭한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는데, 그 쌓아놓은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바위 중턱에 잣나무가 서 있는데, 그 바위를 올라가려면 나무를 건너가서 그 잣나무를 끌어 잡고 바위틈을 돌아 등과 배가 바위에 부딪힌 다음에야 그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그러니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었는데, 종리(從吏) 옥곤(玉崑)과 용산(聳山)은 능숙하게 올라가 발로 뛰면서 손을 휘저었다. 내가 일찍이 산음(山陰)을 왕래하면서 이 바위를 바라보니, 여러 봉우리들과 다투어 나와서 마치 하늘을 괴고 있는 듯했다. 지금 내 몸이 직접 이 땅을 밟아보니, 모골이 송연하여 정신이 멍하고 내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원문]

    訪新涅. 無僧. 亦負峭壁. 菴東北有巖. 曰獨女. 五條離立. 高皆千餘尺. 宗云. 聞有一婦人. 累石巖間. 獨棲其中. 鍊道沖空. 故爲號云. 所累石猶存. 柏生巖腰. 欲上者. 梯木挽其柏. 廻繞巖闕. 肯腹俱盪磨. 然後達其頂. 然不能辦命者. 不能上. 從吏玉崑聳山. 能上而超足麾手. 予嘗往來山陰. 望見是巖. 與諸峯角出. 若柱天然. 今而身跨玆地. 毛骨愯然. 恍疑非我也.

    -퍼온글- 

     

    독녀암(노장대,함양독바위)

    독바위 앞에 함양,산청,하동을 붙였길래 모두 항아리를 닮았는줄 알았다.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엔 부인이 홀로 기도하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니 독녀암으로 부르거나 바위 아래 계곡에 노장대동 마을이 있었으니 노장대가 더 어울린다.
    금서면 화계에선 상투바위라 부른다.

     

    김종직_유두류록 1472년

    (신열암)암자의 동북쪽에는 독녀(獨女)라는 바위 다섯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높이가 모두 천여 자나 되었다. 법종이 말하기를,
    “들으니, 한 부인(婦人)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놓고 홀로 그 안에 거처하면서 도(道)를 연마하여 하늘로 날아올라갔으므로 독녀라 호칭한다고 합니다.”
    라고 하였는데, 그 쌓아놓은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바위 중턱에 잣나무가 서 있는데, 그 바위를 올라가려면 나무를 건너가서 그 잣나무를 끌어잡고 바위 틈을 돌아 등과 배가 바위에 부딪힌 다음에야 그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그러니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었는데, 종리(從吏) 옥곤(玉崑)과 용산(聳山)은 능숙하게 올라가 발로 뛰면서 손을 휘저었다.
    내가 일찍이 산음(山陰)을 왕래하면서 이 바위를 바라보니, 여러 봉우리들과 다투어 나와서 마치 하늘을 괴고 있는 듯했다. 지금 내 몸이 직접 이 땅을 밟아보니, 모골이 송연하여 정신이 멍하고 내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산청 쪽의 화개 사람들은 상투를 닮았다고 상투바우라 하고, 함양의 휴천 사람들은 독아지를 닮았다고 장독바우라 부른다. 또 한 마천 쪽 사람들은 筆鋒이라 부르기도 하기에 마천의 60번 도로 위에서 확인해 보니 붓끝을 닮기도 했으나 가장 두드러진 형상은 유림 쪽에서 본 상투 모양의 독바위 모습이다.
     
    예전에 함양군에서 운암마을에서 노장동을 거쳐 이곳 독녀암 까지를 빨치산 탐방루트로 지정을 해서 함양 독바위를 “노장대” 라고 하였으나 한국전쟁까지 노장동에서 5대를 살았다는 <손종만>씨 외 여러 지역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노장대는 토착민들이 부르는 노장동 마을의 별칭이며 함양독바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한다. 노장대는 노장동 마을의 옛 이름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일제강점초기에 전국적으로 행정구역을 정리할 때 행정표기상 노장대 마을이 노장동으로 바뀐 듯하다. 독바위는 그 예전부터 독바위라고 불렀다고 문헌에도 나와 있다.

     

    안락문(安樂門)

    지리산 석문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긴 석문으로 빨치산들이 이 석문 을 통해서 내려오면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준다고 회유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인근에 경찰과 빨치산 정순덕이 교전하던 선녀굴이 있다.

     

    와불산,臥佛山 (트랭클 지명)

     

     

    오뚜기바위

     

    상내봉삼거리

     

    싸립재

     

    싸립재골 단풍

     

    허공다리골(허공달골)

    허공다리골이라 부르기도 하고 허공달골, 골짜기가 넓어 허공에 걸린 달이 아름답게 보이는 골, 이라 허공달골이라 하다, 허방다리(구멍난 다리)가 생기면서 허공다리골과 허공달골로 뒤섞어 부르지 않았을까...?

     

    어름터독가

    紫眞洞(자진동) 어름터 주변으로 추정함.

     

    지산대,芝山䑓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소재 芝山䑓(지산대) 석각(180624)

     

    지산대 석각을 찾아간 것은 1580년 변사정이 언급한 자진동(紫眞洞)과 1922년 권도용의 방장산부(方丈山賦)에 보이는 氷峙(빙치)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함이다. 지산대 석각의 시기는 乙亥년 3월 즉, 83년 전인 1935년 3월로 추정한다. 1922년 권도용의 방장산부(方丈山賦)에 지산대 석각에 대한 기록이 없고, 이전의 어떤 유산기에도 지산대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1956년에 발행된 함양 군지에 '지산대는 추성리 쑥밭재(봉전령) 아래에 있으며 鄭允洪이 占有한 곳이다(在芝山䑓蓬田嶺下 鄭允洪所占)'라는 기록이 유일한데, 1956년 당시 鄭允洪이라는 분이 생존해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石臺에 대한 기록이 '新增石臺'로 기록되어 있어 1956년에 추가한 내용일 수도 있고, 그 이전에 함양군지를 간행하며 新增한 것일 수도 있다. 1956년 당시 생존의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1580년 변사정의 자진동과 1935년 정윤홍의 지산대가 유관하다고 추정하기 때문에 탁본을 하게 되었다. 1922년 권도용의 빙치1580년 변사정의 자진동이 확인되면 두류암에 대한 위치는 저절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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