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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삼골 & 간미봉
    지리 산행기 2024. 12. 9. 17:19

    # 언제: 2024년 12월 07일 토요일

    # 산행지: 칠삼골, 간미봉,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1.6km   05시잔 50분

    # 산행루트: 천은사 주차장   - 칠삼골 - 간미봉능선 - 상북골재 - 간미봉 - 간미봉남능 

                       천은사 상생의길 - 천은사주차장

     

     

    천은사(泉隱寺) 범종소리

    천은사 범종소리 지리산에 숨어든다
    깨질 듯 울리는 저 아픈 날의 긴 여운 
    산중의  숨은 번뇌를  쓸어내는 울림인가
    대지를 파고드는 낮고도 엄연한 소리
    부정할 줄 모르는  영원한 울림이여
    대승의 마음 하나로  天恩을 어우르네  

     

    천은사(泉隱寺)

    천은사(泉隱寺)는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 지리산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천은사는 신라 때 창건된 고찰이다. 신라 중기인 828년(흥덕왕3)에 인도의 덕운(德雲) 스님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명산을 두루 살피던 중 지리산에 들어와 천은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천은사 중건 당시 지어진 극락보전 상량문에 의하면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당 희종 건부2년(875년)에 연기(도선국사)가 가람을 창건하였고 후에 덕운이 증수하였다."
    "<唐 僖宗 乾符二載 緣起相形而建設 德雲因勢而增修.>"

     

    그런데 일제시대에 간행된 구례읍지에는 이 기록에서 창건주 연기는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의 별호인데 이것을 유래로 잘못해석하여 도선국사 이후의 스님인 덕운을 창건주로 왜곡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들이 도선국사가 창건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 유학시 일행선사로 부터 3천8백 비보사찰을 중건 혹은 창건토록 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신라 조정에 긴밀히 모의하여 신라 국토 곳곳에 사찰과 탑을 건립하였던 점을 생각하면 천은사도 바로 이러한 경우일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렇게 볼때 인근 화엄사의 창건연대(544년)와 비교해 볼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기 보다는 중창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창건주에 대한 기록은 밝혀진 바 없어 그 시기와 유래를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절은 더욱 번성하여 충렬왕 때(1275~1308)에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되었다. 그후 계속해서 많은 수도자가 진리의 광명을 터득하는 수행처로서의 역할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의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고, 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는 등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후 다시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1610년(광해군2)의 일이다. 당시 절의 주지 혜정선사(惠淨禪師)가 소실된 가람을 중창하고 선찰로서의 명맥을 이끌어 나갔다. 뒤이어 1679년(숙종5)에도 단유선사(袒裕禪師)가 절을 크게 중수했는데, 이로부터 절이름을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바꾸었다.

    1715(숙종41)에는 팔상전에 영산회상도를 조성하였고, 1749년(영조25)에는 칠성탱화를 조성하였다. 1774년(영조50) 5월에는 혜암선사(惠庵禪師)가 그 전 해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전각을 중수하면서 절을 새롭게 중창하였다. 혜암선사는 수도암(修道庵)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남원부사 이경륜(李敬倫)에게 도움을 구하고 산내의 여러 사찰과 힘을 합쳐 2년간에 걸친 중창불사를 원만히 이루어냈다. 지금의 가람은 대부분 이때 이루어진 모습이니 혜암선사의 중창은 절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은사 설화와 전설

    절이름이 바뀐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고 한다.

     

    천은사골

     

    상북골재 골

     

    칠삼골

     

    간미봉(艮美峰798m)

    간미봉(艮美峰798m)은 아름다운 것과는 어긋난 봉우리란 뜻의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과 산동면 면계선상의 간미봉 능선상의 봉우리다. 백두대간 종석대(1356m) 부근 1329m봉에서 본 줄기가 성삼재와 작은고리봉을 거쳐 만복대로 이어지면서 지리산 서북능선으로 이어갈때 남쪽으로는 차일봉 능선이 원사봉으로 내려갈 때,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 산줄기가 있는데 이름하여 간미봉 능선으로 간미봉 능선상의 최고봉이 간미봉이다. 간미봉 능선은 시암재-상복골재-간미봉(艮美峰798m)-지초봉(芝草峰596m.할미봉)-까치절산을 거쳐 섬진강 상류수 서시천의 구만제(이평저수지)까지 도상거리 10.5km로 내리뻗은 지능선을 통칭한다. 능선상에는 '아름다운 것과는 어긋난 봉우리'란 뜻의 간미봉(艮美峯728.4m) 외에도 지초봉(596m.현장엔 할미봉 이라고도 함)과 까치절산(295.3m:현지 안내문에는 까치산으로 표기)도 있다.

     

    천은사사생의 길

    천은사(泉隱寺) 주변에는 상생의 길이 있다.
    인근의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공존하자는 의미로 2020년 12월에 조성됐다.
    상생의 길은 나눔길, 보듬길, 누림길의 세 구간으로 전체 거리는 3.3km이다.
     
    나눔길은 천은사 주위 산길을 한 바퀴 도는 1km 구간이다.
    소나무 숲을 거닐며 생명의 에너지를 체험할 수 있는 명상의 길이다.
     
    보듬길은 천은저수지 주변 산길을 따라 걷는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사색을 즐길 수 있는 1.6km 구간이다.
     
    누림길은 모두 함께 누린다는 의미의 무장애 탐방로이다.
    천은저수지 제방 시작점에서 수홍루까지의 700m 구간이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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