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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2022년 05월 29일 일요일
# 산행지: 광주광역시, 전남 담양, 화순, 무등산 산행
# 산행거리: 17.5Km 06시간31분
# 산행루트: 무등산장주차장 - 의상봉 - 꼬막재 - 신선대 - 북산(북봉) - 규봉암(광석대) - 장불재 - 입석대 - 서석대 -
중봉 - 무등산옛길 - 무등산장주차장
무등산,無等山(무진악, 武珍岳, 서석산, 瑞石山)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화순군·담양군에 있는 산. 호남정맥의 중심 산줄기로 일컬어진다. 최고봉 천왕봉의 높이는 1,186.8m이다. 산 전체는 산정 부군의 암석노출지를 제외하면 완경사의 토산을 이루고 있다. 산세는 웅대하며,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어 사철경관 아름다운 경승지가 많다. 3대 석경은 서석대·입석대·광석대이다. 1975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어 한국의 제21호 국립공원이 되었다. 전체 면적은 75.425㎢이다.
무등산은 비할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뜻이다. 북쪽의 나주평야와 남쪽의 남령산지(南嶺山地)의 경계에 있는 산세가 웅대한 산으로, 통일신라 때 무진악(武珍岳) 또는 무악(武岳)으로 표기하다가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란 별칭과 함께 무등산이라 불렸다. 이 밖에도 무당산·무덤산·무정산 등 여러 산명을 갖고 있다.
의상봉,義湘峰
원효사에서 정상을 바라보면 그 아래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의상봉(550m)인데 위는 완만하지만 서쪽 사면은 절벽으로 준수한 경관을 이룬다. 의상봉은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8,300만년 전)의 미문상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부에 암상이 노출되어 있다. 의상봉에는 팬홀(panhole)과 토르(tor) 등의 풍화지형이 잘 관찰되는데, 비마족바위와 벼루바위의 팬홀이 잘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1592~1598) 의병장인 김덕령 장군이 지왕봉의 뜀바위에서 말을 타고 여기까지 단번에 뛰어내려 생긴 말 발자국이 비마족바위라고 전해진다.
신선대
해발고도 778m인 북산의 남서쪽 능선에 위치한 신선대는 높이 약 6m의 오각형 내지 육각형의 돌기둥으로 구성된 주상절리대이다. 신선대 근처에 위치한 억새평전은 2개의 급사면과 3개의 완사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완사면은 과거 주빙하기후 환경에서 동결, 융해작용으로 사면이 평탄화 과정을 거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형성된 능선에는 급사면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암괴들이 흩어져 있으며 넓은 영역에 걸쳐 자라는 억새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규봉암,奎峰庵
규봉(奎峰)은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에서 동남쪽으로 3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1,100m에 이른다. 규봉암(奎峰庵)은 규봉에서부터 남동쪽에 이르는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상부에서 약 900m, 규봉에서 약 600m에 이른다. 규봉은 1872년 「채색 지도」에도 무등산 정상부의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표시되어 있다. 규봉암은 행정 구역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규봉암을 말하지 않고서는 무등산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무등산의 또 다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규봉암에 대한 기록은 신라 시대에 의상 대사가 서석과 규봉을 보고 정사(精舍)를 세웠다고 한 것이 최초이다. 조선 초기 문신 권극화는 “광산(光山)의 진산을 무등산 혹은 서석산이라고 하는데, 그 형세가 웅장하여 모든 산에 비길 바가 아니다. 산 동쪽에 암자가 있어 이를 규암(圭庵)이라 하고 그 곁에 서석(瑞石)이 겹겹이 서 있는데 [중략] 옛날 의상 대사가 이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비로소 정사(精舍)를 세웠고, 계속하여 보조와 진각이 공부하여 도를 얻어 그 꽃다운 자취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삼존석(三尊石)과 십이대(十二臺)를 보면 대개 이를 생각할 수가 있다.” 라고 하면서 무등산에 대한 아름다움과 규봉암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후 제대로 절의 모습을 갖추어 창건하기는 798년(신라 원성왕 14)에 당에서 귀국한 순응 대사였다고 전하고 있다.
권극화가 언급한 규봉암은 암자와 함께 있는 서석(瑞石)을 통틀어 이야기 하고 있다. 규봉에 있는 암자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 창건되고, 폐사되었다가 재건되고,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지만, 규봉암의 서석은 오랜 세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규봉 일대의 서석은 입석대, 서석대로 대표되는 무등산의 주상 절리 지형이다. 무등산의 주상 절리 지형은 암괴가 크고 장엄하며, 암괴가 층층이 단을 이루어 마치 병풍과 같은 모습을 갖는다. 그 중에 규봉암은 다양한 주상 절리대가 주변의 식생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계절마다 그 색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규봉은 행정 구역상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 있으며, 높이 약 1,100m이다. 규봉은 무등산 정상부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진 능선부의 중간에 위치한 규봉암은 규봉의 남동쪽 약 600m에 있고, 높이 약 850m이다. 일반적으로 불리는 규봉암 일대에 있는 층층의 암괴를 규봉으로 불리운다.규봉암을 노래한 시와 기행문
무등산의 생성 과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규봉암 경관의 아름다움이다. 과거 많은 선인들은 규봉암 일대의 경관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대표적인 시로는 김창흡과 기대승의 시가 있다. 이들은 규봉암의 주상 절리를 “무수한 기이한 봉우리” 또는 “암석의 기이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광석대(廣石臺)[광석대에서][김창흡]
무수기봉렬(無數奇峯列)[무수한 기이한 봉우리 열 지어 있어]
회간유차대(回看有此臺)[고개 돌리니 바로 광석대로구나]
식피사적의(息疲斯適矣)[피로 풀기에 적당하고]
연상경유재(延賞更悠哉)[구경하기 또한 문득 유유하네]
후세단제단(後勢丹梯斷)[붉은 계단 끊어진 뒤 기세와]
전도적벽개(前途赤壁開)[붉은 벼랑 열린 앞 길이라]
관기선적근(觀棊禪跡近)[바둑 두는 신선의 자취 가까이서 본 듯하여]
부좌욕망회(趺坐欲忘迴)[가부좌하고 않아 돌아갈 마음 잊었네]규봉사(圭峯寺)[규봉사에서][김극기]
궤상고난명(詭狀苦難名)[괴상한 모양 무엇이라 이름하기 어려운데]
등림만상평(登臨萬象平)[올라와 보니 세상이 눈 아래에 있네]
석형재금출(石形裁錦出)[돌 모양은 비단을 잘라 만든 것 같고]
봉세탁규성(峯勢琢圭成)[산 형세는 옥을 깎아 이룬 것 같네]
승천병진적(勝踐屛塵迹)[좋은 곳에 오니 세속의 더러움 끊었고]
유서첨도정(幽棲添道情)[그윽이 사니 도정이 더하네]
하당포차망(何當抛此網)[어찌 세상 일 버리고]
부좌학무생(趺坐學無生)[부좌하여 무생불법을 배우지 않으리.][『동국여지승람』 권40]고경명(高敬命)은 1574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무등산과 주변 지역을 답사한 기록인 『유서석록(遊瑞石錄)』을 통해 규봉암, 광석대, 문수암, 은신대 등을 유람한 기록을 남겼다. 이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규봉암(圭峯庵)
금석사를 지나서 산허리를 감돌아 동쪽으로 나오니 이곳이 규봉으로 김극기의 시에 이른바 ‘바윗돌은 비단을 마름질하여 장식하였고, 봉우리는 백옥을 다듬어 이루었네[石形裁錦出峯勢 琢圭成]’ 라 한 것이 빈말이 아님을 알겠다. 암석의 기묘하고도 오래된 품이 입석과 견줄 만하다고 할 수 있으나 폭이 넓고 크며 형상이 진기하고도 훌륭한 점에서는 입석이 이에 따를 수가 없다. 규봉의 경치는 권극화(權克和)의 기록이나 동국여지승람에 자세하게 나와 있어 생략한다. 그런데 예로부터 전하기를 해동의 서성(書聖)이라 하는 신라 성덕왕 때의 명필 김생(金生)이 쓴 ‘규봉암(圭峯庵)’이라는 삼대문자(三大文字)의 액자가 있었으나 훗날 어떤 자가 절취해 가버렸다고 한다.
광석대(廣石臺)
광석대가 있는 곳은 규봉암의 서쪽으로 그 석면(石面)이 깎은 듯 넓고 평탄한 것이 격에 맞고 수십 명이 둘러앉을 만하다. 당초에는 서남쪽이 조금 낮았으나 절의 중이 사람들을 모아 큰 돌을 괴었다고 하는데, 그 엄청나게 큰 바위를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그렇게 하였는지 감탄할 뿐이다. 이른바 삼존석(三尊石)이라 한 것이 광석대의 남쪽에 있는데 그 꼭대기가 숲 위에 창연히 솟아 있어서 바위가 더욱 웅장하게 보여 그 기세를 돕는 것 같다. 또 열 아름이나 되는 노송이 하늘을 가려 비스듬히 광석대 위에 걸쳐 뒤덮고 있으니 그 잎은 푸르고, 그늘은 짙어 시원한 바람이 저절로 일어나 한더위에도 홑것을 입고는 오래 앉아 있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천관산, 팔령산, 조계산, 모후산의 여러 봉우리가 모두 눈 아래 내려다 보인다. 무릇 규봉암의 빼어남이 서석[무등산]에 있는 모든 암자 가운데 으뜸이라면 이 광석대 또한 규봉 10대 가운데 가장 빼어났으니 남쪽에서 제일경이라 하여도 옳을 것이다. 다만 최치원 선생 같은 분의 행차를 얻어 훌륭한 시를 읊어 규봉 위에서 한번 취한 붓을 휘둘러 아름다운 휘호를 남길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감회가 없지 않다. 마치 진주의 쌍계사나 합천의 해인사에 최 선생이 시를 남긴 것처럼.
문수암(文殊庵)
광석대의 서쪽 길에는 문지방 같은 돌이 가로질러 있는데 이 돌을 넘어들면 문수암이다. 암자 동쪽 기슭에 오목하게 패인 돌이 있어 그 중앙에서 샘이 솟아나오며 돌 틈에는 석창포가 수북이 피어 있고 그 앞에는 높이가 넓이가 수십 척 되는 바위가 있다. 풍혈대(風穴臺), 장추대(藏秋臺), 광석대에서 서북쪽으로 돌층계를 따라 몇 발자국을 돌면 자월암(慈月庵)이다. 이 암자의 동편에는 풍혈대가 있는데, 돌 밑에 있는 구멍으로 풀잎을 뜯어 넣어보니 조금 펄럭이는 기미가 있다. 이 암자의 서쪽에는 병풍 같은 입석이 있으며 노송이 그 위에 우거져 있으니 여기가 바로 장추대인데 깊은 골짜기를 굽어보면 머리끝이 쭈뼛할 정도로 아스라하다. 장추대에서 서쪽으로 가서 낭떠러지를 따라 남쪽으로 잡아 돌면 오솔길로 나서는데 그 넓이가 한 자도 못된다. 좁은 길에는 패인 곳을 돌로 덮은 데가 더러 있어서 밟으면 덜거덕 하는 소리가 나고 내려다보면 아득한 절벽으로 조심스럽게 돌을 밟고 가는데 걸음을 멈추면 다리가 떨려 발꿈치를 붙이고 설 수가 없다. 낭떠러지가 다하면 움푹 패인 데가 나서는데 마치 원숭이처럼 기어올라야만 한다.
은신대(隱身臺)
장추대 남쪽이 곧 은신대인데 여기에는 누운 다복솔[矮松] 너댓 그루와 철쭉 몇 무더기가 모두 드러누운 듯 자라고 있다. 은신대의 서쪽에 있는 돌은 바둑판같이 네모반듯한데 전하는 말로는 옛날 도선 국사가 좌선하던 곳이라 한다. 그 북쪽에 있는 청학(靑鶴), 법화대(法華臺) 등은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어 모두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한식경 뒤에 벌벌 떨며 다시 손으로 땅을 짚고 팽조(彭祖)가 샘을 굽어보는 형상으로 조심조심하며 내려와 선생을 모시고 문수암에서 묵었다.”무등산에서 가장 빼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한 규봉암
선인들이 무등산에서 규봉암 일대를 최고의 경관 지역으로 보는 이유는 주상 절리 자체의 경이로움이라고 할 것이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큰 암괴와 수정의 6각 기둥 같이 반듯한 암석이 포개어져 있어 이는 하늘에 닿았다고 한다. 이러한 형상은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도 각별하고, 기개의 상징으로 남았을 것이다. 규봉암 일대의 대표적인 지형 경관은 단연 주상 절리이다. 규봉암 일대의 송하대, 광석대, 풍혈대, 장추대, 창학대, 송광대,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은신대 등의 이 주상 절리는 일정한 형태를 보이지만, 각각이 다른 모양으로 어우러져 있다.
이들 주상 절리대는 수직으로 긴 바위가 층층이 얹혀 있으며, 마치 긴 탑과 같은 형상을 가진다. 하나하나가 봉우리와 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는 듯한 기묘한 바위들이 규봉암을 에워싸고 있고, 주변의 노송들과 어울림이 매우 아름답다. 입석대나 서석대가 바위 자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지만, 규봉암은 바위 자체도 입석대 보다 아름답지만, 여기에 주변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라 하겠다. 규봉암 일대의 바위는 무등산 그 어느 지역보다 크기가 크다. 입석대의 바위가 한 변의 폭이 1.5m 내외를 보이지만, 규봉암의 바위는 한 변의 폭이 3m를 넘는 것들이 허다하고, 높이는 입석대의 두 배에 해당된다.규봉암 아래에 넘어져 있는 바위는 길이가 약 15m를 보이고 있어,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이러한 바위가 하나의 단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3개의 단 이상으로 층층이 쌓여져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무등산을 등반하면서 규봉암에 도달하면, 주변 풍경에 발길을 멈추게 되고, 절이 가지는 포근함에 머무르게 된다. 하나하나의 주상 절리들을 돌아보고, 화순 이서의 전경을 바라보게 되고, 안양산과 낙타 능선을 볼 수 있는 풍경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지역이 규봉암이다.
석불암(石佛庵) 마애불(磨崖佛)
입석대
무등산의 정상 1,017m 지점에 있는 돌기둥의 무리이다. 무등산의 대표적인 절경의 하나로 장불재(長佛峙)에서 동쪽으로 약 200m 올라가면 정상의 서쪽에 있다.
높이 10∼15m의 돌기둥이 반달모양으로 둘러서 있는 석경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경관이다. 돌기둥은 5∼8면체의 각석(角石)이며, 하나의 암주(巖柱)나 3,4단의 석주(石柱)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 바위에 ‘立石(입석)’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축단을 통해서 이곳이 가뭄이나 질병의 전염이 심할 때 지방관리들이 하늘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제를 지내던 제천단(祭天壇)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하여도 이곳에 입석암(立石庵)을 비롯하여 주변에 많은 암자와 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석대
무등산의 최고봉인 천왕봉(1,187m)의 남서쪽에 위치한 서석대(1,050m)는 임석대(950m)와 함께 천연기념물인 무등산주상절리대에 속하며, 높이 약 30m, 너비 1~2m의 다각형 돌기둥 200여 개가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무등산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주상절리대를 구성하는 암석은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명명된 화산암으로서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8,700~8,500만년 전)에 분출된 화성쇄설물로 형성된 용결응회암이다. 이 응회암이 천천히 식는 동안 부피가 줄어들며 수축될 때 인장력이 작용하여 주상절리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무등산이 광주를 품 듯 시가지의 전경과 멀리 월출산을 조망할 수 있고 해질녘 서석대에 비치는 노을이 장관을 이룬다.
#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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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바위
벼루바위
비마족바위(말발굽바위)입니다. 무술 훈련을 하던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장군이 지왕봉의 뜀바위에서 비마로 여기까지 뛰어내린 발자국 하나라는 전설의 흔적입니다.
의상봉 조망바위에서 바라 본 무등산 누애봉과 정상 인왕봉,지왕봉,천왕봉
병풍바위 신선대
너럭바위
관음전(觀音殿)..
1996년에 중건된 정면과 측면 각3칸의 팔작지붕 주심포 건물이다.
내부에는 닫집과 주불인 관세음보살좌상, 관음후불탱화, 오백불화, 신중탱화, 범종 등이 모셔져 있다.
보조석굴(普照石窟)
한국불교에 큰 빛을 남긴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창건하기 전에 좌선하던 곳이라 하여 보조석굴이라고 부른다.
보조석굴(普照石窟)
한국불교에 큰 빛을 남긴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창건하기 전에 좌선하던 곳이라 하여 보조석굴이라고 부른다.
지공너덜
장불재에서 규봉까지 무수히 깔려있는 너럭바위.. 무등산의 서 사면에 덕산너덜과 동남 사면에 지공너덜 두개의 너덜이 있다.
지공너덜이라 부르게 된 것은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에게 설법을 듣던 나옹선사가 이곳에 수도하면서 명명한 것이다.
지공대사가 여기에 석실을 만들고 좌선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개의 돌을 깔았다고 한다.
석불암(石佛庵) 마애불(磨崖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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